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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저 큰 빚을 탕감받은 채무자들이다.
방탕한 영혼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이익에 관심을 끊음으로써 살아남는다. 그들이 그렇게 할 때 상황은 정말 끔찍해진다.
아마도 가장 좋은 성경의 예는 탕자의 이야기일 것이다.당신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 남자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중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달라고 한다. 이는 당시 문화로 볼 때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한 탕자는 노골적인 이기심을 그대로 드러냈다(눅 15:12). 아버지가 죽을 때에 이르지도 않았으나 아들은 자기 몫의 유산을 받기 원했다.
이 상황은 탕자와 함께 사는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은 상처를 입히고 당신은 피를 흘린다. 고통은 늘 따라온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의 무게로 쓰러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인한 사랑은 자주 용서한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나 탕자들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진 더 큰 빚이 깨끗이 탕감되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
용서의 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탕감해주신 어마어마하고 갚을 길 없는 빚을 생각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용서하신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따라 상대를 용서할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를 계속 살펴보면 아버지의 이 같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둘째 아들이 유산을 요구하자 아버지는 그것을 아들에게 내어준다. 그 아들은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가서 무분별하게 살다가 돈을 탕진한다. 그 땅에 흉년이 들자 그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고, 돼지 치는 일을 하게 된다. 그의 어리석은 반항이 말 그대로 그를 돼지우리로 인도해서 죄의 진흙에서 뒹굴게 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입은 허름한 옷, 주린 배, 살기 위해 돼지에게 주고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 자신이 선택한 일의 결과임을 느낀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눅 15:16). 그러나 그곳에 홀로 남아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할 때 진리의 광선이 그의 마음을 비춘다. 예수님은 그가 스스로 돌이켰다고 말씀하신다(눅 15:17). 그것은 모든 탕자들이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버리고 온 고향에서 풍족했던 삶을 떠올리며 그것을 자신의 선택 결과들과 대조시켜본다. 그리고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깨닫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 15:18,19)
여기서 우리는 참된 회개를 발견한다. 아들이 자신이 믿어온 거짓 이야기를 인지할 때 그 일이 일어나는 것에 주목하라. 그는 자기가 한 일이 단지 실수가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과 죄였다. 그는 자신이 피해자가 아님을 인정한다. 그는 더 이상 자격이 없었다. 이 깨달음은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역할을 보게 한다. 그는 아들의 특권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신을 품꾼의 하나로 대해달라고 부탁할 계획을 세운다(눅 15:19).
당신은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알 것이다. 아들이 집 가까이에 갔을 때 아버지가 그를 보고 달려와 안아주며 환영해준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많은 것을 배우기를 바라시지만, 한 가지 강력한 교훈은 탕자가 집으로 돌아올 때 우리에게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을 환영하는 아버지 입장에 두기 전에 우리 모두 탕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났고, 유산을 탕진했으며, 회개해야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당신의 탕자와 관계에서 그 아버지처럼 하려면 먼저 이 사실을 이해하고 믿어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께 받은 용서를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에게 그대로 베풀겠는가?
성경은 용서가 상호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기 원한다면 먼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마 6:14,15; 눅 17:3,4). 용서에는 중복 조항이 따라온다. 우리가 용서받기 원한다면 먼저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막 11:25).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십자가는 무엇보다 작은 빚에 처벌을 가해야 하는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풀어준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의 이해할 수 없는 빚을 탕감해주셨음을 상기시킨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서로에게 보내셔서 형벌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축복을 전하게 하신다. 우리가 힘든 탕자에게 환영하는 아버지 역할을 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의 방탕함을 인정하고 우리가 하늘 아버지로부터 받은 은혜를 고백해야 한다.
은혜를 베풀 때 우리는 형벌을 내리는 자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큰 빚을 탕감받은 채무자들이다.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십자가 그 사랑으로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떠나보내기》- 데이브 하비 & 폴 길버트 / 규장
† 말씀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시편 103장 10, 11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요한일서 1장 9절
† 기도
주님의 용서하심을 기억하며 마음을 어렵게 한 사람을 용서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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